산티아고순례길 16

《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4. 바이욘에서 생장피드포르, 그리고 오리손까지

아침, 바이욘역의 긴장된 공기아침 일찍 바이욘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 앞 광장에는 이미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단순한 여행객의 모습이 아니라, 대부분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었다. 각자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그들의 옷차림과 눈빛은 하나의 공통된 긴장과 설렘으로 묶여 있었다. 나와 아내도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서 있었는데, 순간 “이제는 정말 시작이구나”라는 실감이 밀려왔다.역사 내부는 소박했지만 붐볐다. 매표소 근처에는 순례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기차 대신 순례자 전용 버스가 생장피드포르까지 운행된다고 했다. 이 작은 변화 하나에도, 나는 ‘내가 지금 특별한 여정에 서 있구나’라는 묘한 자각을 했다.버스에 올라, 생장으로 향하다버스 안은 이미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독..

카테고리 없음 2025.09.11

《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2. 파리에서

아침, 파리의 공기아침 일찍 숙소 문을 열자 아직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와 닿았다. 파리의 아침은 분주하면서도 여유로웠다. 어제 인천공항에서 파리까지 날아온 피곤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오늘은 파리 시내를 하루 종일 걸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은 가벼웠다.거리에는 이미 출근하는 파리지앵들이 발걸음을 재촉했고, 카페 앞에는 빠른 아침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작은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 한 잔, 그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세느강에서 곧 세느강변에 다다랐다. 사실 세느강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폭이 좁았다. 한강처럼 웅장하게 펼쳐져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물빛은 다소 혼탁했다. 하지만 세느강에는 한강에는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루브르, 오르세, 에펠탑, 노트르담, 모든..

카테고리 없음 2025.09.05

📢 공지 –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며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었던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와 [까미노 길 위의 풍경] 시리즈는 많은 분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으며 이어져 왔습니다.이제 그 여정을 한 단계 더 확장하여, 실제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을 소설적 서사와 기록으로 풀어내는 대장정을 시작합니다.그리고, 산티아고순례길 너머에 있는 더 큰 그림 "걷기"에 대한 세상도 걸러 헤쳐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시리즈 – [ 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 앞으로 이 공간에서 연재될 본편은 “산티아고 순례기” 입니다.실제 800km 프랑스길 전 구간을 하루하루 따라가는 장편 서사주인공의 눈을 통해 그날의 구간에서 보이는 풍경, 만나는 사람들, 마을의 일상과 음식 이야기가 펼쳐집니다길 위에서 자연스레 흘러나..

카테고리 없음 2025.09.01

[까미노 길 위의 풍경] 짐 운송 서비스 – 동키서비스

프롤로그 – 배낭의 무게, 마음의 무게 처음 까미노를 나설 때 우리는 다짐한다. “끝까지 내 배낭은 내가 멜 거야.” 하지만 열흘, 스무 날이 지나면 10kg 남짓의 배낭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어깨와 무릎, 그리고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가 된다. 그제야 깨닫는다. 배낭 속에는 옷과 물건뿐만 아니라 불안과 완벽해야 한다는 집착까지 들어 있다는 것을.어느 날, 나는 알베르게 문 앞에서 결심했다. 오늘 하루는 내려놓아 보자. 그렇게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짐 운송 서비스, 동키서비스였다. 동키서비스란 무엇인가동키서비스는 순례자가 배낭을 다음 목적지 알베르게로 미리 보내는 운송 서비스다. 예전에는 나귀가 짐을 날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승합차나 밴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아침에 알베르게에서 신청해 ..

카테고리 없음 2025.08.27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내면의 상처를 안아주는 길

고요한 새벽, 길 위에서 만난 첫 번째 이야기 메세타 초입, 해가 막 솟아오르기 전의 공기는 차갑고, 땅은 밤새 맺힌 이슬로 촉촉했다. 배낭을 조정하며 첫 발을 내디딘 순간, 뒤에서 들려온 가벼운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회색 머플러를 두른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이름은 마리아(56, 독일).그녀는 눈을 마주친 뒤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저는 남편을 2년 전에 잃었어요. 그 후로 제 안의 세상이 멈춰 있었죠. 이 길이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할지, 솔직히 두렵기도 해요.”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계획했지만, 출발을 준비하던 해에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그녀는 한동안 집 밖을 거의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유품 중 발견한 지도와, 함께 쓰던 순례 가이드북이 그..

카테고리 없음 2025.08.16

[까미노 길 위의 풍경] 스페인 시골마을의 커피 한 잔

길 위의 갈증이 향기로 변하는 순간아침 6시 반, 아직 하늘은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지만 이미 첫 발걸음은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부르고스에서 나와 몇 시간을 걸었을까, 발 아래 자갈이 서걱이며 작은 먼지 구름을 만든다. 가방 속 물통의 물은 미지근해지고, 햇볕은 점점 각도를 높이며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그럴 때면 입 안 가득 퍼지는 상상 속 향기가 있다. 바로 ‘카페 콘 레체(café con leche)’의 향. 까미노를 걸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니라, 그날 하루를 다시 걷게 만드는 연료이자 위로라는 사실을.스페인 시골마을의 바(bar)는 순례자들에게 하나의 ‘목표 지점’이 된다. 표지판에 마을 이름과 거리 수치가 나타날 때,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피로가 ..

카테고리 없음 2025.08.15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오래된 꿈을 다시 찾기 위해

낯선 입구, 오래된 꿈의 호출아침 공기는 아직 서늘하고, 산등성이 너머로 부드러운 햇살이 흘러내립니다. 하루가 막 열리는 순간, 발밑의 흙길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 듯 보이지만, 마음속에선 작은 떨림이 일어납니다. 까미노의 어느 구간이든, 처음 발을 내디딜 때의 그 ‘문턱’ 같은 감각은 늘 찾아옵니다.순례자들은 종종 말합니다. “나는 어쩌면 까미노를 걷기 전부터 이미 그 길 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단순한 여행을 시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래전 잊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부르러 가는 듯한 긴장감. 우리가 이 길에 발을 디딜 때, 그 문턱은 ‘출발점’이 아니라 ‘오래된 꿈의 입구’에 가깝습니다.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에서 길을 시작하던 한 순례자는 배낭을 메며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5.08.14

[까미노 길 위의 풍경] 메세타를 걷다 – 고요함과 바람의 끝없는 풍경

메세타란 무엇인가메세타(Meseta)는 스페인 중부 고원 지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까미노 데 프란세스에서 부르고스와 레온 사이, 약 220km에 걸쳐 펼쳐진 평원으로, 고도는 평균 800m 안팎. 농경지가 대부분이며, 하늘과 들판,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흙길 외에는 특별한 지형 변화가 없습니다.나무가 드물어 그늘이 거의 없고, 여름에는 강한 햇볕이,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길을 지배합니다. 어떤 순례자는 이 단조로운 구간을 ‘걸을 가치가 없는 지루한 길’이라며 건너뛰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바로 이 메세타를 ‘진짜 까미노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부릅니다.“첫 번째 순례에서는 메세타를 피했어요. 두 번째 순례에서는 걸었죠. 그때 깨달았어요. 이곳이야말로 길의 본질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걸..

카테고리 없음 2025.08.13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가슴 속 깊은 죄책감을 씻기 위해 – “끝없는 길 위의 고해성사” 씻기지 않는 마음의 얼룩사람의 마음 속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놓지 못하는 한 조각이 있습니다.그것이 크든 작든, 때로는 그저 “그럴 수 있었던 일”일 뿐인데,우리는 스스로를 가차 없이 심판합니다.어느 날, 지인의 한마디가 오래전 사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무심코 지나쳤던 사람의 눈빛, 나의 선택으로 상처받았을지도 모를 누군가,그리고 그때 하지 못한 사과.그것들은 세월 속에서 잊히는 대신, 서서히 더 짙어진 얼룩이 되어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눌렀습니다.그래서 저는 까미노를 떠올렸습니다.끝없이 걷는 동안, 발걸음마다 묵직한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그리고 혹시, 그 길 위에서 용서를 구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죄책감과 길 – 무게를 ..

카테고리 없음 2025.08.12

[까미노 길 위의 풍경] 새벽을 깨우는 발자국 – 이른 아침 출발 풍경

감정이 시작된 순간아직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새벽 다섯 시.알베르게 안은 조용한 긴장감으로 감돌고,누군가 조심스럽게 지퍼를 열고,누군가는 작은 헤드랜턴을 켠다.그 발소리는 무언의 인사처럼 부드럽고침묵 속에 오히려 서로의 마음이 더 가까워진다.순례자의 하루는 세상이 깨어나기 전,먼저 걷는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고,달빛은 물러갔지만 태양은 아직 오지 않았다.깜깜한 길 위에 오직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만 흐른다.등 뒤에서 비치는 붉은 빛.어깨 위에 무겁게 얹힌 배낭의 끈 소리.그리고 맞은편에서 스쳐 지나가는 조용한 인사."부엔 까미노."단 한 마디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감정의 흐름 → 사색과 회상왜 사람들은 이토록 이른 새벽에 걷는 걸까.수면이 부족해 피곤한 몸..

카테고리 없음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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