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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2. 파리에서

joyskim 2025. 9. 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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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파리의 공기

아침 일찍 숙소 문을 열자 아직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와 닿았다. 파리의 아침은 분주하면서도 여유로웠다. 어제 인천공항에서 파리까지 날아온 피곤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오늘은 파리 시내를 하루 종일 걸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은 가벼웠다.
거리에는 이미 출근하는 파리지앵들이 발걸음을 재촉했고, 카페 앞에는 빠른 아침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작은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 한 잔, 그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세느강에서

 

곧 세느강변에 다다랐다. 사실 세느강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폭이 좁았다. 한강처럼 웅장하게 펼쳐져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물빛은 다소 혼탁했다. 하지만 세느강에는 한강에는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루브르, 오르세, 에펠탑, 노트르담, 모든 유명한 건축물과 역사의 흔적이 이 강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강변이 아파트 단지와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면, 세느강은 역사와 이야기가 빽빽이 서려 있는 “시간의 강”이었다.
나는 난간에 서서 오래 바라보았다. “물의 폭은 좁아도, 그 위에 흐르는 이야기는 끝이 없구나.”

 

루브르 박물관과 광장

 

세느강을 따라 걷다 보니 루브르 박물관이 나왔다. 유리 피라미드 앞은 이미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볐다. 줄을 서서 들어가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릴 듯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를 박물관 안에서 보내고 싶진 않았다.
광장 한쪽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진을 찍으며 웃는 커플, 지도를 펴놓고 동선을 짜는 가족,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여행자. 그 모두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 보였다.
나도 잠시 그들 틈에 끼어 앉아, 지난 60여 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나는 언제 이렇게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있었던가?

 

 

 

파리의 카페에서

루브르를 뒤로 하고 골목을 조금 걸어 나오니 작은 카페들이 이어졌다. 파리의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의자들이 모두 길거리를 향해 놓여 있고, 사람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작은 잔에 담긴 진한 에스프레소, 그리고 곁들여 나온 크루아상. 첫 입을 베어 물자 버터의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진짜 파리지앵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메뉴판을 보니, 여기서는 물도 와인도 모두 유료였다. 스페인에서는 가끔 와인이 무료고 물이 유료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파리는 전혀 달랐다. 이곳은 철저히 계산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그조차 파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게뜨, 빵의 도시

 

파리의 아침을 지나면서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빵집 앞 풍경이었다. 바구니에 수북이 쌓인 바게뜨,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뜨거운 김. 빵집 앞을 지나자 진하고 구수한 빵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바게뜨 하나를 tucked under arm(겨드랑이에 끼고) 집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두 개, 세 개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이 파리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순례길에선 매일 이 빵을 먹게 되겠지.” 단순하지만 깊은 맛, 배낭 속에서 쉽게 무르지 않는 단단한 바게뜨는 순례자의 길벗 같은 음식이 될 터였다.

 

 

 에펠탑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앞에 섰다. 그 거대한 철탑은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웅장했고, 마치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관광객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탑을 올려다보며 잠시 영화 <에펠>을 떠올렸다. 철골을 세우며 비난과 반대 속에서도 끝내 완성했던 사람들의 집념. 지금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랜드마크지만, 처음에는 ‘파리의 흉물’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자유의 상징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탑 앞에서 잠시 자유인이 되고 있었다. 나 역시 내 어깨에 얹힌 지난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었다.

 

 

몽마르트르 언덕

 

오후에는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성심성당을 향해 오르는 계단은 길고 가팔랐다. 숨이 차오를 때쯤, 언덕 위 광장에 다다르니 수십 명의 화가들이 나란히 앉아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때 이곳에서 초상화를 그려본 적이 있다. 그런데 결과는 영 내 모습 같지 않았다. 화가는 내 얼굴을 지나치게 어리게 그려주었고, 동양인의 얼굴을 낯설게 표현했다. 그때 느낀 당혹스러움이 다시 떠올랐다. “이곳의 화가들은 사람의 진짜 얼굴을 보는 걸까, 아니면 그들이 상상하는 얼굴을 그리는 걸까.”
하지만 그 광경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세상을 바라보는 곳, 그것이 몽마르트르였다.

 

 

길 위의 대화

개선문 근처에서 길을 찾고 있었을 때였다. 지도를 들고 서성이는 나를 보던 한 중년의 프랑스인이 다가와 “어디를 찾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며 잠시 우리와 함께 걸었다. 걸음을 옮기며 그는 내가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아니요,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도쿄에는 가본 적 있지만, 서울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순간 파리라는 도시가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낯선 곳에서 나를 잠시라도 ‘길 위의 동행자’로 대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 지하철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탔다. 파리 지하철역은 예상보다 오래되고 낡았다. 타일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벽에는 오래된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강한 바람이 불며 종이 조각들이 흩날렸다.
승강장에서 기다리던 순간, 젊은 남녀 몇 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갑자기 내 턱 밑에 종이를 들이밀며 무슨 말을 쏟아냈다. 순간적으로 낯선 불쾌감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아내가 내 팔을 잡아끌며 멀리 떨어지자, 그들은 금세 다른 관광객에게 다가갔다. 소매치기였다.
순례길에서는 이런 불안한 일은 없기를,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 더 따뜻한 배려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저녁, 다시 세느강

 

해가 저물 무렵 다시 세느강으로 향했다. 낮에 보았던 강은 분주했지만, 저녁의 세느강은 차분했다. 강 위로 황금빛 햇살이 번져나갔고,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경쟁과 성취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곳에서는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60년 동안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달려온 내 인생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세느강의 흐름이 내 마음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듯했다.

마무리 – 파리에서 배운 것

파리는 화려했다. 그러나 동시에 허무하기도 했다. 세계인들이 모여드는 이 도시는 코스모폴리탄의 자유를 품고 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감정이 내일의 순례길을 준비하는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단순히 관광객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순례자로서 내 인생의 또 다른 장을 열기 위해 온 것이다.
파리의 하루는, 그 화려함과 허무 속에서, 내가 왜 순례길에 나서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