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5

《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3. 파리에서 바이욘까지

👉 Camino Journal Day 3: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떼제베를 타고 바이욘까지. 프랑스 농촌 풍경, 떼제베 기차 안에서의 에피소드, 바이욘과 비알리츠 해변의 추억을 담은 순례길 준비 이야기. 몽파르나스역 – 복잡한 출발의 아침 파리에서의 둘째 날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하는 여정의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바스크 지방의 관문, 바이욘(Bayonne). 이곳은 프랑스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가는 고속철 떼제베(TGV)가 닿는 마지막 큰 도시로, 순례자들이 생장피드포르로 가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길목이다.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몽파르나스역(Gare Montparnasse)**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유리 천장으로 빛이 쏟아져 내렸고, 어제와는 또 다..

카테고리 없음 2025.09.09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 어릴 적 바람을 되살리는 여정 "

프롤로그 – 사라진 바람을 찾아서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바람을 품고 산다. 소박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그 바람은 우리를 앞으로 달리게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그 바람을 잊는다.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체면과 책임을 위해. 결국 언젠가 돌이켜보면, 가장 순수했던 나의 바람은 사라진 듯 보인다.그러나 까미노의 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그 바람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아(56, 독일) – 바람개비를 든 소녀마리아는 소녀 시절 시골 언덕에서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결혼과 육아, 가정의 무게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이 독립한 뒤에도 공허함만 남았다.“나는 누구였을까?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까미노에서 바..

카테고리 없음 2025.09.01

순례자 식탁 – 물과 와인 사이에서

프롤로그 – 길 위의 하루는 식탁에서 완성된다 까미노의 하루는 걷는 데서 시작하지만, 결국 식탁에서 완성된다. 순례자들은 해가 뜨기 전 길을 떠나, 메세타의 바람과 산길의 오르막을 지나며 땀을 쏟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마을 식당, 알베르게의 공동 테이블, 혹은 작은 바의 한 구석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친 얼굴이지만, 테이블 위의 빵과 와인, 그리고 함께 둘러앉은 동료 순례자들의 웃음 속에서 하루의 무게가 풀린다. 식탁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위로와 교감, 새로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물과 와인 – 낯선 문화의 충격 한국 순례자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풍경은 바로 물값과 와인값의 역전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무료로 제공되는 물이 스페인에서는 유료다. 반대로 와인은 무료로 제공되거나 아주 저렴하다..

카테고리 없음 2025.08.30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나에게 스스로 주는 가장 긴 선물"

프롤로그 – 자기 자신을 위한 선물이란 현대인의 삶은 늘 남을 위해서 돌아간다. 가족, 직장, 사회, 그리고 비교 속에서 자기 자신은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까미노는 우리에게 묻는다.“마지막으로 당신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한 게 언제입니까?”이 길은 가장 오래 걸리는, 그러나 가장 값진 선물이다. 잊혀진 ‘나’를 다시 부르는 길 사람들은 일 속에 파묻혀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 고통이나 시련을 겪을 땐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잊는다. 하지만 극복 이후에는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선물을 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까미노의 길 위에서는 ‘평범한 나’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깨닫는다.왜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가라파엘(42, 스페인)“20년간 가족을 위해 일만 했어요. ..

카테고리 없음 2025.08.29

[까미노 길 위의 풍경] 알베르게를 나설 때의 풍경

– 새로운 하루를 여는 문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알베르게의 문이 열리기 전, 실내는 고요하다. 침대 위에서 부스럭거리며 배낭을 정리하는 소리, 끈을 조이는 소리, 플라스틱 봉지의 바스락거림이 새벽의 음악처럼 들린다. 누구는 여전히 졸린 눈으로, 또 누구는 이미 설레는 표정으로 준비를 마친다. 이 모든 긴장과 설렘은 한 문을 나서며 터져 나온다. 알베르게 문을 나서는 순간, 어제의 나는 사라지고 오늘의 내가 시작된다. 문을 여는 순간, 맞이하는 공기 차가운 새벽 공기가 순례자의 뺨을 스친다. 어떤 날은 촉촉한 이슬 냄새가, 어떤 날은 먼지 섞인 흙내음이, 또 어떤 날은 갓 구운 빵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그 순간은 ‘다시 태어남’의 은유와도 같다. 밤새 눌러 두었던 감정과 피로가 사라지고, 발..

카테고리 없음 2025.08.25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미래를 그리기 위한 여백 만들기

미래는 빈 공간에서 자란다 까미노의 길을 걷다 보면, 미래에 대한 계획은 놀랍게도 더 또렷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머릿속의 복잡한 그림이 지워지고, 백지의 공간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흔히 미래를 그리려면 목표와 계획을 세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까미노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준다. 미래는 여백에서 싹트고, 그 여백은 오직 비움 속에서만 생겨난다. 걸음 속에서 떠오르는 물음표 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렇게 말한다.“나는 이 길에서 인생 계획을 다시 쓰려 했는데, 결국 답 대신 질문만 얻었어요.”“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무엇을 더는 하고 싶지 않은지는 알게 되었어요.”메세타의 끝없는 평원 위에서, 사람은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목소리는 종종 “어떻게 살아..

카테고리 없음 2025.08.23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기억을 정리하고 떠나 보내는 시간

걷는 동안 떠오르는 얼굴들, 말없이 흘려보내는 의식, 그리고 남겨지는 새로운 나에 대하여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오래된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 --> 기억을 정리한다는 것의 의미 까미노를 걷기 전, 내 배낭에는 옷과 세면도구, 상비약만 들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진짜 무게는 배낭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떠나오며 굳게 다문 말, 끝내 전하지 못한 안부, 뒤늦게 이해한 표정들이 발걸음마다 되살아났다. 기억은 예상보다 끈질겼고, 동시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상냥했다. 잊으려 할수록 달아나던 것들이, 걸음의 리듬 속에서는 조용히 돌아와 이야기를 끝맺자고 손짓했다. ‘기억을 정리한다’는 말은 때로 잊어버리겠다는 의지처럼 들린다. 그러나 까미노가 알..

카테고리 없음 2025.08.22

[까미노 길 위의 풍경] 레온 – 시간과 믿음이 공존하는 도시

― 순례길 위, 중세와 현재가 나란히 걷는 곳 길 위에서 만난 또 하나의 ‘멈춤’메세타의 끝없는 평원을 지나, 드디어 붉은 기와 지붕이 펼쳐진 도시가 보였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레온의 모습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겼다. 여기서는 시간도, 발걸음도, 심지어 마음도 잠시 속도를 늦춘다.도시와의 첫 만남 ― 대성당 앞에서레온의 심장은 단연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eón)'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첨탑,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순례자의 피로를 한 번에 씻어낸다. 아침 햇살이 유리 조각을 통과해 바닥 위에 쏟아질 때, 그 빛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편지처럼 느껴진다.한 노신부가 성당 앞을 쓸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짧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여행..

카테고리 없음 2025.08.09

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빚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까미노, 내가 나에게 용서하는 길 멈추지 못했던 이유들“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마음속에 문득 떠오른 이 말 한마디.누구에게도 빚을 졌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무언가에 빚지고 있다고 느끼며 살았다.부모에게, 사회에게, 실패한 과거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하루하루를 채무자처럼 살아내는 일상.그건 단지 통장의 잔고 때문만은 아니었다.더 잘해야 한다는 기대,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죄책감, 미루어둔 감정의 청구서…그 모든 것이 마음의 빚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그리고, 까미노가 떠올랐다. 까미노는 ‘도망’이 아닌 ‘내려놓음’이다많은 이들이 순례길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세상을 등지고, 나를 되찾기 위해서다.하지만 내게 까미노는 ‘회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

카테고리 없음 2025.08.08

[까미노 길 위의 풍경] 팜플로나 – 투우의 도시, 순례자도 머무는 곳

― 전통과 열기, 그리고 조용한 걸음이 만나는 교차로 도시가 바뀌었다, 내 리듬도 잠시 멈췄다몇 날 며칠을 들판과 산길만 걷다가갑자기 ‘도시’라는 풍경을 마주하면 마음이 어색해진다.팜플로나에 도착한 날도 그랬다.좁은 골목길 대신 아스팔트와 자동차 소리,자연의 냄새 대신 커피와 구운 고기의 향.그러나 동시에,이 도시에는 길 위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묘한 열기가 있었다.“팜플로나에 도착했구나.”한참을 걷고 나서야나는 이곳이 단순한 중간 기착지가 아니라,**‘멈춤을 허락하는 도시’**임을 깨달았다.투우와 순례의 교차점, 팜플로나팜플로나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 지방의 중심 도시이자,전 세계적으로는 **‘산 페르민 축제(투우 축제)’**로 가장 유명하다.축제 때면 수천 명이 모이고,거리엔 하얀 옷과 붉은 스카프가..

카테고리 없음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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