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타의 끝없는 평원을 지나, 드디어 붉은 기와 지붕이 펼쳐진 도시가 보였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레온의 모습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겼다. 여기서는 시간도, 발걸음도, 심지어 마음도 잠시 속도를 늦춘다.
도시와의 첫 만남 ― 대성당 앞에서
레온의 심장은 단연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eón)'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첨탑,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순례자의 피로를 한 번에 씻어낸다. 아침 햇살이 유리 조각을 통과해 바닥 위에 쏟아질 때, 그 빛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편지처럼 느껴진다.
한 노신부가 성당 앞을 쓸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짧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행자는 발걸음으로 기도하고, 순례자는 그 기도를 길 위에 남기지요.”
시간의 골목 ―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풍경
성당에서 조금만 걸으면, 돌로 깔린 골목길 사이로 중세의 흔적이 숨어 있다. 로마 시대의 성벽, 아라베스크 문양이 남아 있는 건물, 그리고 한쪽에서는 현대식 카페에서 커피를 내린다.
나는 작은 바(Bar)에 들러 ‘카페 콘 레체’를 시켰다. 바텐더는 내 배낭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Buena suerte, peregrino(행운을 빕니다, 순례자).”
그 한마디에 낯선 도시가 금세 나의 길이 되었다.
순례자의 도시 ― 밤의 레온
해질녘, 레온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광장은 저녁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거리 악사는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해 기타를 연주한다.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이지만, 그 속에서도 묘한 평온함이 흐른다.
나는 광장 한쪽 벤치에 앉아, 손에 쥔 순례자 여권을 펼쳤다. 그 위에는 하루하루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도, 내 여정 속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의미 해석 ― 시간이 주는 선물
레온에서 나는 ‘시간’이란 단어를 새롭게 배웠다. 여기서의 시간은 서두르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은 몇 세기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사람들은 오늘도 여유롭게 하루를 보낸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빠른 기적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 속에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