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동안 떠오르는 얼굴들, 말없이 흘려보내는 의식, 그리고 남겨지는 새로운 나에 대하여
기억을 정리한다는 것의 의미
까미노를 걷기 전, 내 배낭에는 옷과 세면도구, 상비약만 들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진짜 무게는 배낭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떠나오며 굳게 다문 말, 끝내 전하지 못한 안부, 뒤늦게 이해한 표정들이 발걸음마다 되살아났다. 기억은 예상보다 끈질겼고, 동시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상냥했다. 잊으려 할수록 달아나던 것들이, 걸음의 리듬 속에서는 조용히 돌아와 이야기를 끝맺자고 손짓했다.
‘기억을 정리한다’는 말은 때로 잊어버리겠다는 의지처럼 들린다. 그러나 까미노가 알려준 정리는 망각이 아니었다. 정리는 자리 바꾸기였다. 앞주머니에 꽉 끼어 숨 쉬기 힘들었던 기억을, 가방의 안쪽 깊숙한 칸으로 옮겨주는 일. 그리하여 무게는 남되, 짓누르지 않게 만드는 일. 발바닥이 땅을 밟을 때마다, 마음의 물건들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루의 끝에 알베르게 침대에 누우면, 나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건넸다. 오늘 나는 무엇을 보냈고, 무엇을 품었는가? 이 질문은 회개의 문장도, 다짐의 주문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존으로 이끄는, 작은 등불이었다.
순례길에서 마주하는 잊고 싶던 기억들
숲길의 고요함은 오래된 기억을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처음에는 바람과 나뭇잎 소리만 들리는 듯하지만, 걷다 보면 숨겨왔던 내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까미노에서 많은 이들이 고백하듯, 길 위에서는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불쑥 올라와 우리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나는 이혼 후, 남은 건 고독뿐이었어요.” 스페인에서 만난 한 독일인 남성은 조용히 말했다. 그는 결혼 생활의 실패가 곧 자기 실패라고 믿으며 몇 해를 스스로를 갉아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걷다 보니 상처가 남아 있어도 길 위에서 ‘다시 시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투자에 실패하고 모든 걸 잃었죠. 집도, 직장도.” 한 한국인 순례자는 자신을 “무너져 버린 중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하루 수십 킬로미터를 걸으며 ‘돈으로만 쌓은 인생은 얼마나 허망한가’를 곱씹었다고 했다. 길 끝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가족과 손에 잡히는 현재뿐임을 확인했다.
“퇴직 후, 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같았어요.” 프랑스의 한 여성은 은퇴 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했다. 직함이 사라지자 이름 석 자만 남았고, 그것조차 무의미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낯선 이들의 “오늘은 괜찮냐”는 인사가 그녀를 다시 사람으로 불러냈다.
“내 과거는 문란했어요. 그리고 나는 늘 후회했죠.” 캐나다에서 온 청년은 술과 관계, 거짓말로 얼룩진 지난날을 감추지 않았다. “걷는 동안만큼은 누구도 내 과거를 묻지 않아요. 나는 그냥 또 하나의 순례자일 뿐.” 익명성은 그에게 치유였다.
“나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매일 왕따였어요.” 폴란드 출신의 한 순례자는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고 했다. 까미노에서 그는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받는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그의 눈물을 이끌었다.
“몇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인생이 실패 같았어요.” 휴학 중 길에 오른 한 대학생은 입시와 자격시험 낙방으로 자신을 무가치하다 여겼다. 그에게 노년의 순례자가 건넨 말. “시험은 인생의 일부일 뿐, 인생 자체는 합격과 불합격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 문장이 그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나는 늘 가난했어요.” 남미에서 온 순례자는 유년의 결핍을 떠올리며 걸었다. 알베르게에서 나누는 작은 식사가 주는 행복 앞에서 그는 또 울었다. “이렇게 나누어 먹는 빵이야말로 내가 어릴 적 원하던 것”이라고.
“암과 싸운 지난 3년, 몸뿐 아니라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항암 치료 후 처음 길을 걷는다는 여성은 말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랐지만 마음의 공허는 치료되지 않았다. 그러나 메세타의 하늘과 밀밭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너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들을 계속 잃어왔어요. 부모, 형제, 친구들까지.” 슬로바키아의 한 노년 순례자는 이미 너무 많은 이별을 겪었고, 더 애도할 힘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걷는 한, 그들도 함께 걷는구나.”
길은 잊으라 하지 않는다. 대신 직면하라고 말한다. 이혼, 실패, 상실, 수치, 병마… 서로 다른 고통의 얼굴들이 이 길 위에서는 같은 언어로 통한다. 결국 모든 순례자가 내뱉는 말은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걷는다.”
떠나보내기 위한 과정: 걷기의 힘
떠나보냄은 선언이 아니라 과정이다. 까미노의 과정은 단순하다. 일어나고, 신발을 신고, 걷고, 먹고, 씻고, 잠든다. 삶이 이토록 소박한 리듬으로 축소될 때, 마음은 과장 없이 자신의 무늬를 드러낸다. 반복은 둔감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예민한 층에 도달하게 한다. 발바닥의 통증에 집중하다 보면 통증이 지나가는 방식과도 친해진다. 슬픔도 그렇다. 회피할 때는 영원히 머물 것 같던 감정이, 마주할 때는 파도처럼 왔다가 간다.
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을 만들었다. 길가의 돌 하나를 주워 손에 쥔다. 떠나보내고 싶은 감정의 이름을 속으로 읊는다. ‘미련, 후회, 자책.’ 다음 고개를 넘을 때, 숨이 가장 고단한 지점에서 돌을 내려놓는다. 돌이 땅으로 돌아가듯 감정은 나를 빠져나가 흙이 된다. 특별한 주문도 웅장한 음악도 필요치 않다. 자연의 질서에 맡겨 흩어지는 일,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느 날 작은 성당의 기도 의자에 앉아, 나는 얇은 종이에 짧은 문장 하나를 적었다. “이제, 놓아준다.” 종이를 접어 촛대 아래에 두고 일어났을 때 마음 한쪽에서 무언가 미끄러져 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오래된 방의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커튼을 흔들며 냄새를 바꾸었다. 깨어보니 호흡도 바뀌어 있었다.
함께 나누는 기억의 무게
까미노의 마을 바에는 저녁이면 작은 합창이 울린다. 서로의 언어로 하루를 건너온 이야기들. 그 안에는 웃음도 있지만 눈물의 소금기도 배어 있다. 우리는 낯선 이의 고백 앞에서 놀랍도록 쉽게 진심을 내어놓는다. 재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전망이 된다. ‘여기서만은 솔직해도 괜찮다.’
“나는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채 장례를 치렀어요. 그런데 오늘, 길가의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그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처음으로 ‘미워했었다’고 적었고, 끝에 ‘사랑했다’고 적었습니다.” — R, 35, 브라질
“이혼 뒤에 자꾸만 ‘왜’만 떠올랐는데, 걷다 보니 ‘그래도’가 생기더군요. 그래도 함께 웃었던 날이 있었고, 그래도 배운 것이 있었고, 그래도 내가 살아남았다는 확신이요.” — S, 41, 프랑스
공감은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 내 이야기를 돌려보는 기술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각자의 상처를 덜 선명하게, 그러나 더 진실하게 비추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손을 올려주는 간단한 제스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문장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이 많았다.
사라지지 않고 새겨지는 기억, 다른 방식의 남음
떠나보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것들은 더 또렷해진다. 다만 남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전에는 날카로운 모서리였던 장면이, 지금은 손바닥에 얹을 수 있는 매끈한 조약돌이 된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가끔 손끝으로 만져봐도 피 나지 않는 모양이 된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몇몇 기억을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보낸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간직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잘 닦은 사진처럼, 더럽혀지지 않은 채로 간직하는 것. 가끔 꺼내어 미소 짓고, 다시 천천히 덮는 것. 이 보관은 집착과 다르다. 집착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지만, 보관은 과거를 과거의 자리에서 존중한다.
길가의 표지석(모호른)에 조개 문양이 새겨져 있듯, 내 마음 안에도 작은 표식들이 생겼다. ‘여기서 나는 울었다’, ‘여기서 나는 용서했다’, ‘여기서 나는 처음 웃었다’. 지도에 좌표가 생기듯, 기억에는 온도가 붙었다. 그 온도가 나를 데우고, 때로는 식혀 주었다.
감정의 전환 – 고통에서 감사로
감정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분노는 경계로, 슬픔은 이해로, 후회는 다짐으로. 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연료가 바로 감사였다. 감사는 결과에 대한 박수가 아니라, 과정을 건너온 자신을 인정하는 시선이었다. 오늘의 발걸음, 오늘의 숨, 오늘의 식사, 오늘 만난 사람들. 사소한 감사가 쌓이자 큰 후회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메세타의 드넓은 평야에서, 나는 하염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감사했다. 목적지도,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 바람이지만 그 바람이 있었기에 나는 움직일 수 있었다. 감사는 해결이 아니라 움직임을 만들어 줬다. 움직임은 다시 감사를 불렀다. 그렇게 작은 바퀴가 큰 바퀴를 돌렸다.
저녁 기도 때, 나는 한 문장을 자주 되뇌었다. “오늘 내가 고통을 덜어준 얼굴이 있었는가?” 남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순간, 내 고통의 모양도 달라졌다. 공감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켰고 그 근육이 감사의 자세를 유지하게 했다.
떠나 보내고 맞이하는 새로운 나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섰을 때, 나는 알았다. 이곳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것을. 대성당의 그림자 아래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떠나보내기로 한 것들은 바람을 타고 흩어졌고, 간직하기로 한 것들은 심장 쪽으로 깊숙이 내려앉았다. 나는 더 가벼워지지도, 더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다만 제 무게를 찾았다.
기억을 정리하는 일은 자신을 다그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예우하는 일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에게 예의를 갖추었고, 다가올 시간에게 환영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제 나는 안다. 떠나보냄은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와 타인을, 지나간 날과 다가올 날을.
길은 끝났지만, 걷기는 계속된다. 도시의 신호등 앞에서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에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짧은 메시지 속에서도. 그때마다 나는 까미노에서 배운 리듬을 떠올릴 것이다. 한 걸음, 한 숨, 한 문장. 그리고 그 리듬 속에서, 오늘의 나를 조용히 배웅하고, 내일의 나를 따뜻하게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