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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3. 파리에서 바이욘까지

joyskim 2025. 9. 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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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mino Journal Day 3: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떼제베를 타고 바이욘까지. 프랑스 농촌 풍경, 떼제베 기차 안에서의 에피소드, 바이욘과 비알리츠 해변의 추억을 담은 순례길 준비 이야기.

 

 

몽파르나스역 – 복잡한 출발의 아침

 

파리에서의 둘째 날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하는 여정의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바스크 지방의 관문, 바이욘(Bayonne). 이곳은 프랑스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가는 고속철 떼제베(TGV)가 닿는 마지막 큰 도시로, 순례자들이 생장피드포르로 가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길목이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몽파르나스역(Gare Montparnasse)**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유리 천장으로 빛이 쏟아져 내렸고, 어제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평소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오늘 이곳은 순례길의 첫 장을 열어주는 출발점으로 다가왔다.

플랫폼 앞 전광판에 **“Bayonne행 TGV – 출발 09:15”**라는 문구가 떠올랐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여정이 시작되는구나.’ 주변에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온 관광객, 출장길에 오르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 그리고 나처럼 배낭을 멘 몇몇 여행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 속에서 나와 아내는 조용히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떼제베에 오르다 – 긴장과 기대

 

열차에 오르는 순간, 한국의 KTX보다 한층 더 세련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좌석은 넓고, 테이블은 깔끔했다. 우리의 자리는 4인용 마주 보는 자리. 그런데 그 자리에 이미 한 프랑스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6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안경 너머로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교수 같은 분위기였다. 그는 두꺼운 서류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체크하고 있었다. 리포트를 채점하는 듯한 모습. 옆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남편의 비위를 살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끔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우리 동양인 부부를 마주 앉은 게 불편했는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5시간 동안 이어질 긴 여정이 순간 무겁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펼쳐진 프랑스의 4월

 

열차가 출발해 파리 교외를 벗어나자, 창밖 풍경은 빠르게 변했다. 빽빽한 건물들이 점차 사라지고, 들판과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4월의 프랑스 농촌은 봄의 빛깔로 가득했다. 밀밭은 아직 무릎 높이로만 자라 있었지만, 바람에 일렁이며 마치 초록빛 파도를 만들었다. 곳곳에 포도밭이 이어지고, 전통적인 붉은 지붕의 농가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하늘은 파랗게 열려 있었고, 흰 구름이 느리게 흘렀다.

나는 창밖 풍경에 빠져들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왜 내가 이 순례길을 택했을까?” 배낭의 무게가 다시 생각나고 어깨를 누르는 듯했지만, 풍경은 그 무게를 덜어내는 듯했다.

 

열차 안의 노교수와 무거운 공기

떼제베 안에서 마주 앉은 노교수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종이 뭉치를 넘기며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시험지 채점인지, 논문 심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빛과 손놀림은 냉철하고 차가웠다.
옆자리의 부인은 남편의 서류가 바람에 흩날리지 않도록 잡아주고, 커피를 대신 챙겨주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말을 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5시간 동안 이어진 그 침묵은 묘하게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내와 나는 가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작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들 앞에서는 왠지 주눅이 들었다. 열차의 엔진 소리와 바퀴가 철로를 스치는 소리만이 배경음을 채웠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스스로를 달랬다. “순례길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혹시 이 노교수처럼 차갑고 권위적인 이들도 있을까, 아니면 전혀 반대되는 따뜻한 영혼들을 만날까?”

 

보르도 – 와인의 고장 스쳐 지나가다

 

열차는 남쪽으로 달리다 보르도(Bordeaux) 역에 멈췄다. 와인의 도시답게 역 주변에는 포도밭과 양조장이 이어져 있었다. 잠시 정차한 플랫폼 위로는 여행객들이 오르내렸고, 와인 관광을 온 듯한 무리들도 보였다.

“여기서 내리면 와인 투어를 할 수도 있겠지.”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지금은 순례길이 목적이다. 와인의 유혹은 잠시 뒤로하고, 열차는 다시 남쪽으로 속도를 높였다.

창밖 풍경은 점점 따뜻해졌다. 북쪽의 봄기운이 이제는 남쪽의 초여름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밀밭은 더 푸르게 익어갔고, 대서양 바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이욘 도착 – 바스크 지방의 관문

 

오후가 되자 드디어 바이욘(Bayonne)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서는 순간, 파리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화려한 수도의 기운은 사라지고, 소박하고 아늑한 지방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다.

도시 곳곳에는 바스크 전통 양식의 붉은 지붕 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강변에는 노천 카페와 빵집이 늘어서 있었다. 마침 장날이라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근교에서 가져온 치즈, 꿀, 수제 햄, 그리고 신선한 채소들이 진열돼 있었고,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오갔다.

“이제야 비로소 프랑스 속의 또 다른 프랑스를 만나는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민박집의 아이, 시아

 

우리가 묵은 곳은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한 한국인 젊은 여성이 운영하는 민박집이었다.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 한국어가 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 집에는 시아라는 네 살짜리 딸아이가 있었다.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금세 다가와 방에 들어와 눕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하루 종일 긴장으로 얼어붙었던 우리 마음을 풀어주었다.

아내는 훗날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주 “시아가 생각나”라며 그날의 아이를 떠올렸다. 순례길이란 결국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작은 인연이 쌓여 큰 기억이 되는 여정임을, 그날 우리는 깨달았다.

 

비알리츠, 대서양의 숨결

바이욘에서 버스를 타고 20여 분 달리면 "비알리츠(Biarritz)"가 나온다.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여름 휴양지이자, 유럽 정상들이 모여 G7 정상회의를 열었던 도시.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대서양의 풍경에 말문이 막혔다.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 파도에 몸을 맡긴 서퍼들, 해변을 따라 걷는 연인들. 모래사장은 눈부시게 하얗고, 바다는 짙푸른 남색으로 일렁였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문득 어린 시절 고향 바닷가가 떠올랐다. 낮선 바다에서 내 뿌리를 다시 만난 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비알리츠에서의 피자 한 조각

 

해변가의 작은 식당에 들어가 피자를 주문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시킨 피자였지만, 그 맛은 지금껏 먹어본 어떤 피자보다도 특별했다. 얇고 바삭한 도우 위에 올려진 치즈와 신선한 토마토, 그리고 바다 내음이 묻어나는 듯한 올리브. 아내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평생 잊지 못할 맛이네.”

그 순간,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여행의 기억을 각인시키는 도장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일을 준비하며

 

바이욘의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우리는 민박집으로 돌아와 배낭을 다시 챙겼다. 내일은 드디어 생장피드포르로 이동한다. 순례길의 진짜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배낭을 메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길을 왜 걷는가?”
그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았지만, 걸음을 옮기다 보면 길 위에서 서서히 풀리리라 믿었다.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시작이네. 잘해봅시다.”

창밖에서는 강바람이 불어왔고,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들려왔다. 순례길을 앞둔 이 밤,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이 벅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