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바람을 품고 산다. 소박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그 바람은 우리를 앞으로 달리게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그 바람을 잊는다.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체면과 책임을 위해. 결국 언젠가 돌이켜보면, 가장 순수했던 나의 바람은 사라진 듯 보인다. 그러나 까미노의 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그 바람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아(56, 독일) – 바람개비를 든 소녀
마리아는 소녀 시절 시골 언덕에서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결혼과 육아, 가정의 무게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이 독립한 뒤에도 공허함만 남았다. “나는 누구였을까?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까미노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느끼는 순간, 그녀는 다시 언덕 위를 달리던 소녀가 되었다.
다니엘(38, 브라질) – 축구 선수의 꿈
어릴 적 다니엘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그러나 무릎 부상으로 모든 게 끝났다. 방황 속에 사업 실패까지 겹쳤다. 그는 절망 속에서 “어린 날의 다니엘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뛰는 아이들을 보는데, 갑자기 제 안에서 공을 차는 소년이 살아났어요.” 그는 눈물 속에서 웃으며 말했다. 까미노는 잃어버린 경기장을 다시 열어주었다.
유미(32, 한국) – 다이어리에 적은 꿈
유미는 중학교 시절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언젠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러나 반복된 시험 낙방은 그 꿈을 지워버렸다.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믿게 됐다. 하지만 까미노에서 만난 순례자들은 그녀에게 직업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단지 “오늘 얼마나 걸었냐”고, “발은 괜찮냐”고 물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내 꿈은 여전히 나와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마르코(62, 이탈리아) – 자전거 소년의 회귀
마르코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 언덕을 오르내리며 자유를 느꼈다. 그러나 평생 회사원으로 살며 모험은 사라졌다. 은퇴 후, 그는 자전거로 까미노를 달리기로 결심했다. “언덕을 오르며 숨이 차올라도, 그때 느껴지는 바람은 다시 열두 살 소년의 바람이었어요.”
타케시(41, 일본) – 친구를 갖고 싶던 아이
타케시는 어릴 적 왕따를 당했다. 늘 혼자였고,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만 간직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사람을 두려워했지만, 까미노에서는 달랐다. 낯선 이들이 먼저 “Buen Camino!”라며 다가왔다. “그 순간, 저는 어린 날의 소원을 이룬 셈이었죠. 드디어 친구를 갖게 된 아이가 된 거예요.”
엘레나(29, 이탈리아) – 세계 여행자의 꿈
엘레나는 어린 시절 세계지도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길을 따라가며 상상했다. “언젠가 나는 이 길들을 다 걸을 거야.” 하지만 청년기의 병마와 경제적 어려움은 그 꿈을 앗아갔다. 까미노는 그녀가 처음 되찾은 여정이었다. “길 위에서 지도를 보며 걸을 때, 어린 시절 제 방 벽에 붙어 있던 세계지도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드디어, 그 꿈을 현실로 옮기고 있었어요.”
루이스(60, 스페인) – 아버지의 미완의 꿈
루이스의 아버지는 평생 산티아고를 가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루이스는 아버지의 오래된 스카프를 챙겨 배낭에 넣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언덕에서 뛰놀던 기억이 늘 제 곁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바람을 이어가기 위해 이 길을 걷습니다. 길 위의 바람은 아버지의 숨결 같아요.”
순례자 식탁에서 피어나는 바람들
순례자들의 하루는 결국 저녁 식탁에서 만난다. 와인을 나누며, 각자가 품었던 어린 날의 꿈을 꺼내놓는다. 한 청년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여행가의 꿈을 말했다. 모두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공통된 감정이 있었다. “나는 어릴 적의 나를 다시 만나고 있다.” 식탁 위의 작은 빵과 와인잔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잊었던 바람을 다시 이어주는 끈이었다.
에필로그 – 바람은 여전히 우리 곁에
까미노 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어릴 적 바람”으로 귀결된다. 누군가는 뛰고 싶었고, 누군가는 친구를 원했으며, 누군가는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다. 그 바람은 성인이 되며 묻혀버린 듯했지만, 사실은 늘 우리 안에 살아 있었다. 까미노는 그 바람을 다시 꺼내어 현재와 연결한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말한다. “이 길은, 내가 잊었던 아이의 바람을 다시 만나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