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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joyskim 2025. 8. 1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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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 깊은 죄책감을 씻기 위해 – “끝없는 길 위의 고해성사”

 

씻기지 않는 마음의 얼룩

사람의 마음 속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놓지 못하는 한 조각이 있습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때로는 그저 “그럴 수 있었던 일”일 뿐인데,
우리는 스스로를 가차 없이 심판합니다.

어느 날, 지인의 한마디가 오래전 사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의 눈빛, 나의 선택으로 상처받았을지도 모를 누군가,
그리고 그때 하지 못한 사과.
그것들은 세월 속에서 잊히는 대신, 서서히 더 짙어진 얼룩이 되어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눌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까미노를 떠올렸습니다.
끝없이 걷는 동안, 발걸음마다 묵직한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혹시, 그 길 위에서 용서를 구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죄책감과 길 – 무게를 지고 걷는 사람들

순례길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병에서 회복한 후 감사의 마음을 담아 걷고,
누군가는 삶의 변곡점에서 다음 페이지를 찾기 위해 걷습니다.
그리고, 드물지 않게 ‘속죄’를 위해 걷는 이들도 있습니다.

2019년 봄,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앞에서 만난 한 노르웨이 남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아버지가 아니었어.
너무 늦었지만,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이 길을 걷고 있네.”



그는 길 위에서 매일 새벽, 고요한 성당 의자에 앉아 오래 기도했습니다.
그 표정에는 자책과 희망이 동시에 묻어 있었죠.
그의 발걸음은 마치 죄책감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듯, 점점 가벼워 보였습니다.

 

걷는 동안 찾아오는 ‘침묵의 고해성사’

순례길의 긴 침묵은,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조심스레 끄집어냅니다.
누군가 앞에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하늘과 들판, 길가의 바람이 나를 대신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카스티야 평원의 끝없는 밀밭 사이를 걸을 때,
저는 마치 제 마음속 법정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변명 대신 사실을 마주하고,
핑계 대신 “그때 내가 틀렸다”는 고백을 속으로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까미노에는 ‘Cruz de Ferro(철의 십자가)’**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각자 가져온 돌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습니다.
그 돌은 대개 ‘내려놓고 싶은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가족과의 갈등, 누군가는 상실감, 누군가는 씻기지 않는 죄책감.
저 역시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돌 하나를 내려놓았습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마음 속 얼룩 위로 아주 가는 빛 한 줄기가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용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화해

까미노가 죄를 씻어주는 성스러운 의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는, ‘용서’가 꼭 다른 사람에게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웁니다.
많은 경우, 가장 오래, 가장 강하게 나를 붙드는 건 **‘나 자신에 대한 미움’**입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뒤, 저는 그때의 선택과 잘못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기억이 저를 송두리째 삼키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나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드는 한 부분임을 인정하게 되었죠.

용서는 때로 상대방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건네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순례자의 말

🔗 “I carried my guilt for not realizing how quickly he would go… I set down my guilt for good.”

— 한 순례자는 Camino del Norte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느낀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 guilt)**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길 위에서 그 죄책감을 자신이 가져온 작은 돌에 담아 십자가나 이정표 근처에 내려놓으며, “마침내 그 죄책감을 놓아주었다”는 표현으로 그 순간의 해방감을 말했습니다. 

 

🔗 “On the Camino… I was forgiven my transgressions…”

— 한 커뮤니티 참여자는 Camino에서 매일 걷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지은 잘못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 경험은 길 위에서 죄를 씻어낼 수 있는 영적인 치유의 순간임을 보여줍니다. 

 

🔗 “The Camino is an opportunity to look into ourselves and find forgiveness for our own shortcomings…   ”https://thefogwatch.com/lessons-learned-camino/?utm_source=chatgpt.com

— 한 블로그 글에서는 Camino 여정을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나 자신을 용서하는 기회를 얻는다고 설명합니다. Alto del Perdón(용서의 언덕)과 Cruz de Ferro(철의 십자가) 같은 상징적인 장소들이 그러한 내면의 치유를 상징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들이 전한 이야기는 모두 “죄책감을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길 위의 고해성사”와 깊은 공명을 이룹니다. 마치 길 위에서 무거운 감정을 조용히 놓아주고, 자기 자신과 화해할 용기를 얻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죠.

 

길 위에서 건넨 편지

까미노를 걷는 동안, 저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편지를 썼습니다.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였지만,
그 길 위에선 마치 상대방이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돌아온 뒤, 저는 그 편지를 조용히 꺼내어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게, 그러나 오래 기다렸던 한 줄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이제 나를 용서합니다.”

그 문장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까미노가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