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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7. 주비리에서 팜플로나로

(약 22km, 순례 시간 6~7시간) 1. 주비리를 떠나며 주비리의 아침은 차분하고 묵직했다. 작은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강 위로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고, 돌다리는 그 안개 속에서 마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고요히 서 있었다. 이 다리는 단순히 건너가는 길목이 아니라, 순례자들에게는 출발과 작별,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돌 위를 딛는 순간, 어제까지의 내가 뒤에 남겨지는 듯했고, 앞으로의 길이 새롭게 열리는 듯했다.한동안 가만히 서서 다리 아래를 보았다. 물살은 바위를 감싸며 흘렀고, 어느 지점에서는 소용돌이가 생겨 금빛 거품을 올렸다. 나는 눈을 감고 13세기 어느 순례자를 상상했다. 해가 뜨기도 전, 낡은 망토를 여미고 이 다리를 건너던 사람. 혹은 전쟁과 기근의 시대에 ..

카테고리 없음 2025.10.02

《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6. 론세스바예스에서 쥬비리로

새벽의 론세스바예스, 출발의 떨림 스페인 나바라 지방의 아침 공기는 프랑스와는 사뭇 달랐다.피레네의 능선을 넘어 도착했던 전날 저녁, 수도원 알베르게의 두터운 벽은 차가운 산바람을 막아주었지만, 긴장과 피로로 뒤엉킨 잠은 그리 깊지 않았다. 밤새 들려오던 이곳저곳의 코골이, 뒤척이는 소리, 누군가의 낮은 기침과 속삭임은 오히려 이곳이 순례자들의 ‘첫 공동체’임을 실감나게 했다. 그리고 새벽, 여명이 깃들 무렵, 알람 소리와 함께 순례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복도에는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끌며 나서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알베르게의 작은 식당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빵과 버터, 잼, 그리고 따뜻한 커피. 어제의 피로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속..

카테고리 없음 2025.09.19

발걸음 지도 – 정선 아리랑길, 노래와 장터와 강이 흐르는 길

강을 따라 걷고, 장터에서 먹고, 박물관에서 노랫말을 만나는 하루. 당일·1박·2박 코스까지 한눈에 담은 확장 가이드. alt="정선천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정선 아리랑길 전경"> 정선 아리랑길 – 강과 마을, 그리고 노래가 흐르는 길 --> 노래가 길을 만들 때 정선은 노래를 품은 고장입니다. ‘정선 아리랑’이란 이름은 어느 한 시절을 구체적으로 가리키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우리의 기억을 아주 또렷하게 깨웁니다. 떠나보낸 사람의 얼굴, 산 너머로 넘어가던 해, 부엌문 간섭처럼 스며들던 된장 냄새 같은 것들. 그 모든 사소하고도 결정적인 장면들이 묶여 ‘아리랑’이라는 후렴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강을 따라 이어지는 정선 아리랑길 위를 걸을 때 비로소 제 몸을 갖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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