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걷습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저녁 산책. 걷기는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행위이기에, 그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에서 존재와 사유, 그리고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려 해왔습니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 방식’이자 ‘사유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걷기를 단순한 육체 활동이 아닌, 철학적·존재론적 행위로서 탐구해 보겠습니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을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사상은 걷는 동안 떠오른다." – 프리드리히 니체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사유의 리듬이다."
"걷는다는 것은 나 자신과 조용히 대화하는 일이다."
"삶이 복잡할수록 우리는 더 자주 걸어야 한다."
"철학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당신이 걷는 길 위에도 있다."
1. 걷는다는 것의 근본적 의미
1.1. 걷기는 사유의 시작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리듬과 호흡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만나고,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는 행위이다. 철학은 종종 ‘앉아서’ 하는 활동으로 여겨지지만, 많은 철학자들은 걷기를 통해 깊은 통찰을 얻었다.
걷는 동안 우리는 외부 자극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반복적인 발걸음 속에서 마음이 자유롭게 흘러가게 된다. 생각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마치 풍경처럼 지나가며 연상되고 연결된다. 걷기는 사고의 공간을 열어주는 문이 된다.
1.2. 걷기와 시간의 재구성
현대인은 항상 시간을 ‘쫓기듯’ 살아간다. 하지만 걷기는 시간과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이 넘쳐나는 시대에, 걷기는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통해 시간을 확장시킨다. 이 느린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삶의 리듬을 다시 발견하고, 자아와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2. 고대 철학자들과 걷기
2.1. 아리스토텔레스와 페리파토스 학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걷기를 통해 제자들과 토론을 나누며 사유했다. 그의 학파는 ‘페리파토스 학파(Peripatetic School)’, 즉 ‘걷는 사람들의 학파’라고 불렸다. 그들은 산책하며 철학했고, 걷는 리듬 속에서 논리적 사고와 변증을 발전시켰다.
걷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철학 그 자체였다.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도, 발걸음을 통해 세계를 탐색하는 일. 그것은 정적인 독서나 글쓰기와는 또 다른 방식의 지성 활동이었다.
2.2. 디오게네스와 거리의 철학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도시의 거리에서 걷고 생활하며 철학을 실천했다. 그는 걷기를 통해 사회의 위선과 허위를 폭로하고, 인간 본연의 삶을 추구했다. 걷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간다는 의미였다.
3. 근대 이후 철학과 걷기
3.1. 장 자크 루소: 걷는 자의 고백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걷기를 철학적 사유의 도구로 삼는다. 그는 파리의 혼잡한 거리보다 조용한 시골길을 걷는 동안 내면 깊은 사유와 감정의 흐름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나는 걷기 시작할 때 생각하기 시작한다.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루소에게 걷기는 자연과의 일치, 자아 성찰, 그리고 사회적 소외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였다. 걷는 동안 그는 자신과 더 가까워지고, 세계와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3.2. 프리드리히 니체: 걷는 자가 사유한다
니체는 철학자 중에서도 걷기를 가장 중시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거의 매일 수 킬로미터씩 산길을 걸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작품의 주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앉아서 하는 사유는 의심스럽다. 진리는 걷는 자에게 다가온다.”
니체에게 걷기는 생명력 그 자체이며, 사고와 의지의 표현이었다. 정지된 철학이 아니라, 유동하는 삶 속에서 철학하는 방식으로서의 걷기를 그는 지향했다.
4. 현대 철학과 걷기의 재발견
4.1. 미셸 드 세르토: 걷는 자는 도시를 다시 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세르토는 저서 『일상의 창조』에서 걷기를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상적 저항 행위로 해석했다. 그는 도시가 계획된 구조물이라면, 걷는 자는 그 구조물 위를 자유롭게 ‘글쓰기’하는 저자라 보았다.
즉, 걷기를 통해 사람들은 도시의 정해진 흐름을 거스르고, 자기만의 길을 만들며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4.2. 레베카 솔닛: 걷기는 해방이다
현대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역사(Wanderlust)』에서 걷기를 특히 여성, 약자, 예술가, 철학자들의 해방의 도구로 조명한다. 그녀에게 걷기는 권력에의 저항이며, 도시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걷기는 모든 이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솔닛은 걷기를 단지 개인의 건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실천적 행위로 본다. 걷는 사람은 단순한 시민이 아니라, 공간을 재구성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존재다.
5. 걷기와 존재의 철학
5.1. 하이데거: 길 위의 존재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세계-속-존재(Dasein)'라고 정의하면서, 세계 안에서 길을 걷는 행위에 철학적 주목을 기울였다. 그는 "길은 스스로 길을 낸다"고 말하며,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중 하나로서 ‘걷기’를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하이데거에게 걷기는 단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존재로 향하는 여정이다. 걷는 동안 우리는 대상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5.2. 메를로퐁티: 몸으로 생각하는 인간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몸’을 강조했다. 그의 관점에서 걷기는 단지 다리의 움직임이 아니라, 세상과의 대화 방식이다. 우리는 걷는 리듬을 통해 공간을 감지하고,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며, 자아를 구성한다.
걷는다는 것은 단지 발걸음이 아니라, '몸으로 사고하고, 존재하는 방식'이다.
6. 걷기와 오늘의 삶
6.1. 걷기의 철학을 일상으로 초대하기
현대 사회는 걷기보다 타기와 속도를 중시하는 구조다. 스마트폰, 자동차, 엘리베이터는 우리의 몸을 점점 정지시키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걷기’가 필요하다. 걷기는 단절된 감각을 회복시키고, 분산된 주의를 집중시키며, 가속화된 삶에서 호흡을 되찾게 해준다.
사색을 위한 걷기, 질문을 위한 걷기, 위로를 위한 걷기. 걷기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6.2. 혼자 걷기와 함께 걷기
혼자 걷는 산책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함께 걷는 길은 타인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한다. 침묵 속에 걸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고, 리듬을 공유한다. 걷기는 공동체적 행위이기도 하며, 정서적 연결의 매개가 될 수 있다.
결론: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걷기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운동이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고 세계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걸으며 우리는 사유하고, 감각하고, 존재한다. 철학은 특별한 책상 위가 아니라, 평범한 보도 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길을 나서보자. 목적 없이 걷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삶은 때로, 가장 단순한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참고문헌 및 권장 도서
- 레베카 솔닛, 『걷기의 역사(Wanderlust)』
-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미셸 드 세르토, 『일상의 창조』
-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