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22km, 순례 시간 6~7시간) 1. 주비리를 떠나며 주비리의 아침은 차분하고 묵직했다. 작은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강 위로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고, 돌다리는 그 안개 속에서 마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고요히 서 있었다. 이 다리는 단순히 건너가는 길목이 아니라, 순례자들에게는 출발과 작별,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돌 위를 딛는 순간, 어제까지의 내가 뒤에 남겨지는 듯했고, 앞으로의 길이 새롭게 열리는 듯했다.한동안 가만히 서서 다리 아래를 보았다. 물살은 바위를 감싸며 흘렀고, 어느 지점에서는 소용돌이가 생겨 금빛 거품을 올렸다. 나는 눈을 감고 13세기 어느 순례자를 상상했다. 해가 뜨기도 전, 낡은 망토를 여미고 이 다리를 건너던 사람. 혹은 전쟁과 기근의 시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