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공항버스에 오르다
4월 중순, 봄기운이 무르익는 시기.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길 위로 나서는 계절이다. 비가 적어 걷기 좋고, 아직 여름의 태양은 뜨겁지 않다.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와 바도 막 문을 열어 순례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우리도 그 시기를 택했다.
새벽 다섯 시, 아직 골목길에는 밤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도로를 덮고, 자동차 몇 대만 드문드문 달리고 있었다.
공항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반짝이는 여행용 캐리어가 바퀴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었다. 그 소리는 경쾌했지만, 내 어깨 위의 배낭은 묵직한 침묵으로 나를 압도했다. 1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 출발 전날까지 수없이 열고 닫았던 배낭. 아내는 담담히 말했다.
“길 위에서는 결국 다 버리게 될 거예요.”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몰라 챙기고 또 챙겼다. 약, 옷, 수첩, 작은 도구들… 회사에서 ‘혹시’를 대비하던 습관이 짐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버스에 몸을 싣자 차창 밖으로 아직 덜 깬 도시가 스쳐갔다. 순간,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 무거운 짐을 메고 가야 하는가?”
출장길이라면 가벼운 캐리어 하나로 충분했을 텐데, 지금은 어깨와 허리를 짓누르는 배낭을 지고 떠난다.
“왜 까미노인가?”
자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부부 동반 모임에서 들었던 농담이 떠올랐다. 누군가 내 아내를 가리키며 좌중을 웃겼다.
“남편 잘못 만나면 저래 고생합니다. 다른 아지매들은 남편 잘 만나 고생 안 하는데….”
그때는 웃고 넘겼지만, 지금은 그 말이 묵직하게 가슴에 남아 있었다. 옆에 앉은 아내를 흘끗 보았다.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어깨에도 나와 비슷한 무게의 배낭이 얹혀 있었다. 그 무게가 단순한 짐인지, 아니면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지워준 보이지 않는 짐까지인지 알 수 없었다. 순간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2. 인천공항의 낯선 시선
버스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동쪽 하늘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거대한 유리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여행객들이 캐리어를 끌고 북적였다. 쇼핑백과 기념품 봉지가 손마다 들려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배낭을 멘 우리는 눈에 띄었다. 등산화를 신고, 허리띠를 조여 멘 우리의 모습은 휴가를 떠나는 여행객의 차림새와는 달랐다. 한 나이든 부부가 우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빛에 ‘어디로 저렇게 준비하고 가는 걸까’라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이 오히려 내 마음을 단단히 조여 왔다.
체크인을 마치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탑승구 전광판에 ‘파리 샤를드골’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그 순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순례자의 길 위에 올라 있었다.
3. 비행기 위에서의 결심
좌석에 앉자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동시에, 13시간이라는 장거리 비행의 부담이 다시 다가왔다. 기체가 활주로를 달리다 하늘로 치솟자, 묘한 떨림이 온몸을 휘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좁은 좌석, 낯선 냄새가 섞인 기내식, 앞자리 화면에 흐르는 영화. 출장은 늘 보고서와 계약서가 함께하는 자리였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오직 내 몸과 배낭, 그리고 긴 여정이 있을 뿐이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눈을 감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길은 어디로 데려갈까?”
답은 없었다. 다만 몸과 마음이 가볍게 흔들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4. 파리 샤를드골 공항 출구까지
13시간의 긴 비행이 끝나고, 파리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입국 심사대를 지나 짐을 찾고, 복잡한 동선을 따라 출구로 향했다.
그 순간, 한 무리의 한국 단체여행객들이 내 앞을 스쳐갔다. 가벼운 캐리어와 쇼핑백,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중 한 여성분이 내 어깨의 배낭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부럽습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겉보기에는 멋져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내 어깨는 이미 배낭의 무게로 땀에 젖어 있었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순례자는 누군가에겐 동경이지만, 당사자에게는 고통과 무게다. 그러나 그 무게 덕분에, 나는 새로운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5. 파리 외곽의 숙소에 도착하다
예약해둔 한국인 민박집에 도착했다.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밤거리는 낯설었지만, 문을 열자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 익숙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거실과 부엌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모두 한국어였다. 순간 반가웠다. 눈앞의 숙소는 한국의 게스트하우스 같았다. ‘아, 다들 순례자들이구나.’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은 순례자가 아니라 파리 관광객들이었다.
옆방에서는 라면 끓는 냄새가 풍겨왔다.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소리까지.
“여기가 정말 파리 맞나?”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소개됐다는 집이라 했지만, 화면에서 본 낭만과는 달리 현실은 소박하고 평범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한국이다. 한국 사람들, 참 대단하다.”
낯선 땅에서도 금세 한국의 향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힘. 그러나 내 마음은 오히려 순례자와의 첫 만남을 더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아직 진짜 까미노는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았다.
6. 첫날의 결론
아내는 창가에 앉아 조용히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새벽 공항버스에서의 긴장, 인천공항에서의 낯선 시선, 비행기 위에서의 결심, 파리 공항에서의 “부럽습니다”라는 말, 그리고 지금 이 민박집의 라면 냄새.
모두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어졌다. 오늘은 이별의 날이었다. 회사와, 익숙한 삶과, 안락한 일상과 작별했다. 내일부터는 시작의 날이다. 길 위의 낯선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순례자다. 내일, 진짜 길 위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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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 설명 (Day 1 – 서울 → 파리 외곽 숙소)
- 이동 경로: 서울 → 인천공항(공항버스) → 파리 샤를드골 공항(비행 13시간) → 파리 외곽 한국인 민박집
- 짐: 배낭 2개, 10Kg,13Kg (캐리어 없음)
- 특이점: 공항에서 주목받는 배낭 차림, 낯선 곳에서의 익숙한 언어(한국 민박)
- 느낀 점: 출장과 관광의 출발과는 전혀 다른 감정. 긴장, 결심, 아내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이 길을 왜 가는가’에 대한 자기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