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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 위의 풍경] 순례자의 배낭 – 꼭 필요한 것만 담는 삶

joyskim 2025. 8. 2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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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시작

까미노를 시작할 때,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배낭을 무겁게 메고 출발한다. 나 역시 그랬다. 혹시나 해서 챙겨 넣은 옷가지, 필요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넣어둔 약품,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책까지. 출발선에서 배낭의 무게는 기대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자 나는 깨달았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불안이었다는 것을.

 

 

 

길이 알려주는 배움

 

며칠을 걷다 보면 순례자들은 공통적으로 같은 경험을 한다. 배낭 속을 열어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꺼내 알베르게에 두고 간다. 그 과정은 단순한 짐 덜기가 아니다. 내 마음속 불필요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훈련이다.

프랑스에서 온 한 순례자가 내게 말했다.

“첫 주는 무게에 짓눌렸고, 둘째 주는 버림을 배웠어요. 그리고 셋째 주가 되니, 비로소 진짜 내가 보였죠.”

그의 말은 내 심장을 콕 찔렀다.

 

 

 

꼭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

 

길을 걷는 동안 남은 것은 단출했다. 두 벌의 옷, 물통 하나, 지팡이, 그리고 작은 수첩.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오히려 불필요한 물건을 내려놓고 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마음은 더 크게 열렸다.

메세타 평원에서 만난 한 여성 순례자는 내게 속삭였다.

“배낭 속에서 비워낸 만큼 내 마음도 비워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바람조차 선물처럼 느껴져요.”

 

 

 

삶의 비유로서의 배낭

순례자의 배낭은 결국 삶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걱정, 과도한 계획, 남의 시선 같은 것들을 짊어지고 산다. 까미노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꼭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 삶은 비로소 단순해지고, 단순한 삶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삶이라는 것을 길은 가르쳐준다.

 

 

가벼워짐의 기적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섰을 때, 내 배낭은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무게는 이제 단순한 물건의 무게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 끝까지 지고 온 삶의 무게였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겼기에, 나는 웃으며 그 무게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길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네 삶에도 꼭 필요한 것만 남겨라. 그래야 더 멀리, 더 오래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