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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까미노를 생각하는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함께 걷는 길

joyskim 2025. 8. 2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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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마주친 ‘타인의 고통’

까미노 길 위에서는 누구나 아프다. 그것이 발바닥의 물집이든, 무릎의 통증이든, 혹은 마음속 깊은 곳의 오래된 상처이든 간에 말이다. 이 길에서 고통은 ‘개인의 것’으로만 남지 않는다. 걷다 보면 옆사람의 절뚝거림을 보게 되고, 낯선 이의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목격하게 되며, 때로는 고통을 나누어 지는 동행자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 공감이야말로 순례길이 만들어내는 가장 특별한 기적 중 하나다.


벤치에서 발을 주무르던 마르타의 고백

레온 근처의 한 시골 마을.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아 있던 '마르타(42, 이탈리아)'는 두 손으로 발을 꼭 감싸쥔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발바닥이 터져 걷기 힘들어 보였던 그녀는, 옆에 앉은 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나는 이 길을 시작할 때, 고통은 나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제 한 순례자가 내 발을 보고 아무 말 없이 파스를 붙여주었죠. 그 순간, 고통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몰라요.”

 

그녀의 눈빛에는 피로와 동시에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벤치에 앉아 발을 주무르는 그 모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주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함께 걸은 한국 청년의 발걸음

부르고스 근처의 한 오르막에서 나는 **지훈(29, 한국)**을 만났다. 그는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있었고,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그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늘 혼자 버텼어요.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제 고통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여기선 모르는 사람들이 ‘괜찮아?’ 하고 묻고, 제 속도를 맞춰 같이 걸어줍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울컥하더라고요.”

 

그날, 나는 지훈과 함께 몇 시간을 걸었다. 그의 느린 발걸음에 맞추며 나도 천천히 길을 걸었다. 이상하게도, 그 속도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사실이 내 마음까지 가볍게 만들었다.


프랑스인 노부부와의 만남

한 비 오는 오후, 나는 작은 알베르게 앞에서 프랑스인 노부부를 보았다. 아내는 허리 통증으로 더 이상 걷지 못해 작은 수레에 앉아 있었고, 남편은 그 수레를 밀며 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연신 “Merci, Merci”를 중얼거렸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남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우리의 순례 방식이에요. 아내가 앉아 있더라도,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랍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고통은 단지 불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를 더 강하게 이어주는 끈이기도 했다.

 


타인의 눈물에 멈춰 선 순간

순례길에서 가장 흔한 풍경 중 하나는 눈물이다. 알베르게 침대 위에서, 성당 기도 중에서, 혹은 아무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서 불쑥 터져 나오는 눈물.

 

나는 어느 날, 벤치에서 흐느끼는 한 젊은 여인을 만났다. 이름은 **소피아(33, 아르헨티나)**였다. 그녀는 가족과의 갈등으로 집을 떠나왔고, 까미노 길 위에서 매일 눈물을 쏟아낸다고 했다. 옆에 있던 독일인 순례자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소피아는 한참 뒤에야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길에서 내 눈물을 누군가 받아주었다는 게, 살아갈 힘이 됩니다.”


공감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연

까미노는 단순히 발걸음을 이어가는 여정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공감하며, 때로는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길이다. 누군가의 발을 주무르는 작은 손길, 천천히 함께 걸어주는 배려, 아무 말 없는 위로의 미소. 이 모든 것들이 모여 ‘공감의 길’을 완성한다.

 

걷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공감은 치료제이자 연결고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연결은 종종 평생 이어지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 길 위에서 나눈 짧은 동행이, 서로의 인생을 바꾸는 큰 울림이 되는 것이다.


고통을 나누는 길 위의 기적

순례는 결국 혼자 걸어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길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고, 때로는 그 고통을 함께 걸으며 나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까미노 길 위에서 나는 수없이 보았다. 서로의 발을 씻어주고, 어깨를 빌려주며, 눈물을 함께 흘리는 사람들을. 그 순간순간이야말로 이 길의 진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