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을 깊이 생각하는 사색의 여정
― 까미노, 삶의 끝에서 다시 삶을 바라보다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삶은 선명해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을 종종 외면한다.
너무 무겁고, 너무 멀고, 너무 불편해서.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까미노를 걷는 동안,
나는 그 죽음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순간들과
종종 마주쳤다.
묘비 옆을 지나고,
한 노인이 ‘다음 해엔 못 올 수도 있어’라고 말하고,
메세타의 황량한 풍경 속에 문득
‘내가 만약 여기서 멈춘다면’ 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순간들마다
삶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순례길 위의 묘비와 철십자가 – 죽음을 마주하는 장소들
까미노에는 죽음을 기리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 포세바돈(Pocebadón)의 철십자가(Cruz de Ferro)
: 순례자들이 가져온 작은 돌을 올리는 곳.
그 돌에는 후회, 용서받지 못한 말, 잊고 싶은 기억이 담겨 있다. - 길가에 서 있는 순례자의 이름 없는 묘비들
: 걷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들의 무덤은 자연과 섞이고, 하늘과 이어진다.
이곳들을 지나며 나는 물었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걷고 있었나?”
“내가 죽는다면,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지금의 나는 정말 나다운가?”
죽음을 떠올릴수록
삶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이 생겼다.
그 질문이 바로 사색의 여정을 만들었다.
삶은 긴 여정이 아닌 ‘매일의 끝’을 사는 일
까미노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Buen Camino!”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오늘 하루 잘 걸어내세요.”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먼 미래의 성공이나 긴 호흡의 여정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반복이다.
까미노는 매일 아침 시작되고, 매일 저녁 마무리된다.
어쩌면 삶도 매일 죽음을 품고 있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오늘 하루를 더 진심으로 걷게 되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을 더 사랑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우울해지기 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살아가기 위한 사유의 문이다.
-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자주 바라보고,
- 고마운 말을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 나를 위해 사소한 기쁨을 허락하고,
- ‘나중에’ 말고 ‘지금’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죽음을 묻는 일은,
삶에 묻지 못했던 질문들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까미노는 나에게 그 시간을 주었고,
그 질문들을 끌어낼 만큼의 고요함을 허락해주었다.
순례자 인터뷰
On the Camino de Santiago, Traversing Landscapes—and Moving Through Grief
이 글의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여행으로 포르투갈 코스를 걷습니다.
170마일 길 위에서 그는 단순한 배낭이 아닌, 슬픔이라는 무게까지 메고 걷는 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내 배낭은 더 이상 물건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 안에 있던 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걷는 행위는 곧 슬픔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자기 치유의 여정이었으며,
결국 그는 죽음 뒤에도 이어지는 삶의 연장선을 체득하게 됩니다.
Hans Sleven의 인터뷰 – ‘Hans Walked the Camino for Daan’
Hans는 친구의 어린 아들 Daan의 죽음을 기리며 카미노에 나섰습니다.
그는 대장암을 이겨낸 이후 지켜온 약속처럼,
“걷는 그 자체로 우리의 상실을 담아냈다”고 말합니다.
그 길 위에서 그는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재정의하는 방식으로 카미노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이 여정은 그에게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사랑과 회복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Reflecting on Life and Death along the Camino de Santiago’ (David McConkey)
David는 캐나다에서 온 순례자이며, 카미노 도중 길가에 세워진 묘비와 철십자가들을 보며
“돌마다 마련된 사연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죽음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지만,
그 흔적들을 마주할수록
“내 삶이 훨씬 더 명확해지고,
삶 속에서 놓치고 있던 감사와 공허를 깨닫게 됐다”고 회고합니다.
마무리 단상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만이, 삶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 파울로 코엘료
“까미노는 걷는 여정이 아니라,
내게 진짜 살아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사색의 경로였습니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나는 오늘을 충분히 살고 있다는 감각으로 걷는다.”
순례길 위의 사색은
삶을 거창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삶을 더 또렷하게, 더 가까이, 더 따뜻하게 만든다.
죽음을 통해 삶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여정을 끝까지 걷고 싶은 이유였다
“나에게 쓰는 묵상의 편지”
“내가 만약 내일 멈춘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나는 누구에게 아직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오늘 내가 가장 사랑한 건 무엇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