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과 빵 냄새가 시작하는 순례자의 하루
길 위의 느긋한 아침
그날 아침은 유난히 조용했다.
일찍 출발한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이미 멀어지고,
나는 낯선 마을의 광장에 멈춰 섰다.
시간은 오전 7시 반,
햇살은 막 회색빛 골목을 감싸기 시작했고
카페 바르(Café Bar) 간판이 슬며시 불을 밝혔다.
어쩐지 이 아침엔
천천히 앉아 빵을 굽고, 따뜻한 우유를 부어 마시고 싶었다.
무언가를 '채우는' 아침이 아니라,
'감사하며 음미하는' 아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까미노 아침의 상징, 카페 바르
스페인 작은 마을마다 한두 개쯤은 꼭 있는
카페 바르(Café Bar).
순례자들이 빵과 커피로 하루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메뉴는 단순하다.
- 토스타다 콘 토마테 (토마토 올린 토스트)
- 크로아상 또는 잼과 버터를 곁들인 빵
- 카페 콘 레체 (우유 듬뿍 섞인 진한 커피)
- 때때로 오렌지 주스, 그리고 순례자의 일기장
가게 안에는 커피 내리는 소리와 빵 굽는 냄새,
그리고 아침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천천히 번진다.
감귤빛 햇살과 잼 발린 빵
작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직접 짠 주황빛 오렌지 주스 한 잔,
버터를 바르고 토마토를 으깨어 올린 바삭한 토스트 한 조각,
그리고 하얀 컵에 담긴 뜨거운 카페 콘 레체.
젊은 순례자 커플이 옆 테이블에 앉고,
중년 여성 혼자 앉아 책을 넘긴다.
주인 할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잼을 덜고,
라디오에서는 스페인어 뉴스가 잔잔하게 흐른다.
그 모든 풍경이,
햇살 속에서 오렌지 껍질처럼 빛난다.
낯선 이와 나눈 한 조각
카운터에 앉은 프랑스 순례자가 내게 말을 건다.
“Tu vas où aujourd'hui?” (오늘은 어디까지 가?)
나는 어색한 스페인어로 대답하고,
우리는 서로의 여정을 잠시 공유한다.
그는 자신의 토스트 반쪽을 내게 건넨다.
“오늘 길이 길 테니 이거 먹어.”
그 작은 나눔이,
이 아침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빵 한 조각에 담긴 환대와 연대의 감정,
그리고 잔잔한 미소.
천천히 먹는 하루의 시작
순례길의 아침은
무조건 이른 출발만이 정답이 아니다.
가끔은 이렇게
앉아서 따뜻한 빵을 천천히 씹는 것,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것,
그것이 더 오래 남는 기억의 풍경이 된다.
아침을 서두르지 않았기에
나는 그날 하루를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 조각 토스트와 카페 콘 레체,
그 안에 담긴 건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인생을 다시 천천히 느끼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