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까미노 길 위의 풍경] "메세타를 걷는다 – 침묵과 바람의 고원에서"

joyskim 2025. 7. 9. 01:35
반응형

 

 

 

 

까미노를 걷는 이들은 종종 메세타에 도달하면 망설입니다.
너무 길고, 너무 덥고, 너무 조용하다는 말을 들어서지요.
하지만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압니다.
침묵이 주는 진짜 무게
그 고요 속에 빠져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걸.

메세타는 순례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자신을 만났다’고 말하는 구간입니다.
한없이 펼쳐진 밀밭과 고요한 언덕, 뙤약볕 아래 먼지 날리는 길 위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메세타란?

메세타(Meseta)는 스페인 중북부에 펼쳐진 넓고 평평한 고원지대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부르고스(Burgos)'에서 시작해
'아스투르가(Astorga)'까지 이어지는 약 200km의 구간을 말합니다.

  • 해발 700~900m에 이르는 넓은 고원
  • 그늘이 거의 없는 들판과 바람 많은 언덕
  • 똑같은 풍경이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느낌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갑고, 마을도 드물어
"가장 힘든 구간", 혹은 "가장 내면적인 구간"이라 불립니다.

 

풍경의 서사 – 단조로움 속의 감정

메세타의 풍경은 극단적입니다.
파란 하늘과 누런 들판, 바람의 소리와 자신의 숨소리만 남는 시간.

가끔씩 수평선 끝에서 성당의 첨탑이 점처럼 보일 때,
그 한 점을 향해 몇 시간을 걸어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고
생각의 굵기가 굵어진다고 말합니다.

 

순례자들의 생각과 고백

 

“길 위에서 나는 말을 줄이게 됐다.”

– 요코(일본, 52세)

메세타에서 나는 처음으로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혼자 걷는 시간은 내 불안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견디기 힘들었지만, 나중엔 말이 필요 없게 됐다.

 “그 길은 울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 마르틴(독일, 45세)

태양 아래 길을 걷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뭘 그렇게 참았는지 모른다.
그냥... 많이 참았던 것 같다. 메세타가 날 풀어줬다.

 “모든 생각이 다 지나갔다. 결국 나만 남았다.”

– 김도훈(한국, 61세)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 가족에 대한 미안함…
다 떠올랐다가, 떠나갔다.
마지막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게 처음엔 무서웠지만…
나중엔 너무 좋았다.

 

 왜 메세타가 중요한가?

  1. 사유와 침묵
    주변이 조용하면 내 안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동안 무시해온 나의 목소리, 감정, 기억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2. 단조로움 속 몰입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지만, 걷는 나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이는 깊은 몰입 상태로 이어지고, 정신의 휴식으로 전환됩니다.
  3. 회복의 시간
    치열함 없이, 경쟁도 없이,
    그냥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메세타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구간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의미 없는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무의미한 듯 이어지는 이 길은 결국,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묻습니다.

 

메세타를 걷는다

바람이 불었다
들판은 아무 말도 없었다
먼지가 발등에 내려앉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걷는다
다른 건, 오늘은
누군가를 용서하고 있다는 것

너무 조용해서
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넓어서
내 마음이 작게 느껴졌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잃어버린 건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

메세타의 바람이
그 말을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