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를 걷는 이들은 종종 메세타에 도달하면 망설입니다.
너무 길고, 너무 덥고, 너무 조용하다는 말을 들어서지요.
하지만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압니다.
침묵이 주는 진짜 무게는
그 고요 속에 빠져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걸.
메세타는 순례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자신을 만났다’고 말하는 구간입니다.
한없이 펼쳐진 밀밭과 고요한 언덕, 뙤약볕 아래 먼지 날리는 길 위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메세타란?
메세타(Meseta)는 스페인 중북부에 펼쳐진 넓고 평평한 고원지대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부르고스(Burgos)'에서 시작해
'아스투르가(Astorga)'까지 이어지는 약 200km의 구간을 말합니다.
- 해발 700~900m에 이르는 넓은 고원
- 그늘이 거의 없는 들판과 바람 많은 언덕
- 똑같은 풍경이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느낌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갑고, 마을도 드물어
"가장 힘든 구간", 혹은 "가장 내면적인 구간"이라 불립니다.
풍경의 서사 – 단조로움 속의 감정
메세타의 풍경은 극단적입니다.
파란 하늘과 누런 들판, 바람의 소리와 자신의 숨소리만 남는 시간.
가끔씩 수평선 끝에서 성당의 첨탑이 점처럼 보일 때,
그 한 점을 향해 몇 시간을 걸어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고
생각의 굵기가 굵어진다고 말합니다.
순례자들의 생각과 고백
“길 위에서 나는 말을 줄이게 됐다.”
– 요코(일본, 52세)
메세타에서 나는 처음으로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혼자 걷는 시간은 내 불안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견디기 힘들었지만, 나중엔 말이 필요 없게 됐다.
“그 길은 울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 마르틴(독일, 45세)
태양 아래 길을 걷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뭘 그렇게 참았는지 모른다.
그냥... 많이 참았던 것 같다. 메세타가 날 풀어줬다.
“모든 생각이 다 지나갔다. 결국 나만 남았다.”
– 김도훈(한국, 61세)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 가족에 대한 미안함…
다 떠올랐다가, 떠나갔다.
마지막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게 처음엔 무서웠지만…
나중엔 너무 좋았다.
왜 메세타가 중요한가?
- 사유와 침묵 –
주변이 조용하면 내 안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동안 무시해온 나의 목소리, 감정, 기억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 단조로움 속 몰입 –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지만, 걷는 나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이는 깊은 몰입 상태로 이어지고, 정신의 휴식으로 전환됩니다. - 회복의 시간 –
치열함 없이, 경쟁도 없이,
그냥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메세타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구간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의미 없는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무의미한 듯 이어지는 이 길은 결국,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묻습니다.
메세타를 걷는다
바람이 불었다
들판은 아무 말도 없었다
먼지가 발등에 내려앉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걷는다
다른 건, 오늘은
누군가를 용서하고 있다는 것너무 조용해서
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넓어서
내 마음이 작게 느껴졌다그리고 알았다
내가 잃어버린 건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메세타의 바람이
그 말을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