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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위의 풍경

joyskim 2025. 6. 2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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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돌을 올리는 곳 – 포세바돈의 철십자가(Cruz de Ferro)

“작은 돌 하나에 담긴 무게 – 우리는 모두 뭔가를 내려놓으러 이 길을 걷는다”

 

철십자가로 가는 길

 

레온을 지나 순례길이 점차 해발 1,500m 가까운 고도를 향해 올라갈 때,
마침내 순례자들은 “Cruz de Ferro”,
‘철의 십자가’라는 이름의 작은 십자가 앞에 다다르게 됩니다.

십자가는 나무기둥 위에 얹혀 있고, 그 아래에는 전 세계 순례자들이 두고 간 돌과 기도, 사연들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곳은 순례길 전체 중 ‘가장 높은 지점’,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는 ‘가장 낮은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순례자들의 ‘소망의 돌’ 이야기

 

■ 아네트(57세, 독일 간호사)

“나는 돌에 이름을 새겼어요.
오랫동안 요양병원에서 간병하던 아이 이름이죠.
그 아이는 늘 하늘을 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돌을 하늘 가까운 이곳에 남겨두고 갑니다.
‘이제 넌 고통 없이 저 위에 있을 거야’ 라는 말과 함께.”

아네트는 작은 눈물방울 하나를 돌에 묻히듯,
철십자가 아래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그 돌을 내려놓았습니다.

 

■ 후안(43세, 콜롬비아 소방관)

“나는 내 아버지의 유품에서 가져온 돌을 올렸어요.
그와 갈등한 채 작별도 못하고 보내버렸거든요.
까미노에서 걸으며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어요.
용서를 구할 수는 없지만, 이 돌이 내 진심을 대신 전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는 멀리서 조용히 돌을 올려놓고,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어떤 눈물도 필요 없는, 깊은 침묵의 고백이었습니다.

 

■ 이소연(31세, 한국 프리랜서 작가)

“나는 내 안의 두려움을 놓고 가기로 했어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 항상 실패할까 두려운 나,
그 ‘나’의 조각을 작은 조약돌에 담아
이곳에 두고 갑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요.”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삭였습니다.
“이제, 괜찮아.”
그리고 조심스럽게 돌아섰습니다.

 

그곳은 '의식'의 장소 – 종교가 아닌, 인간의 진심이 머무는 곳

 

포세바돈의 철십자가는 종교적인 장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인 감정의 절정'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고,
  • 누구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내려놓고,
  • 누구는 자기 자신에게 다짐을 남기고,
  • 누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와 이별합니다.

그 돌은 작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삶 전체의 무게입니다.

어떤 이는 편지를 접어 돌 아래 넣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진을 태운 재를 가져와 묻기도 합니다.

 

그 순간, 그 감정

 

철십자가 앞에 서면 누구나 말이 없어집니다.
바람 소리만이 허공을 가르고,
마치 ‘여기서는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고요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이곳은 눈물이 허락되는 곳이며,
자신을 마주보는 가장 깊은 의식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돌을 내려놓고 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어요”

 

많은 순례자들이 말합니다.
“이곳 이후로 길이 달라졌어요. 나도요.”

  • 무거운 배낭은 그대로였지만
  • 마음의 무게는 분명 줄어들었습니다.

그 작은 돌 하나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하던 자신에게
‘이제 시작할 수 있어’라는 응원을 스스로 보낼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