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발자국 – Camino Journal》 Day 6. 론세스바예스에서 쥬비리로
새벽의 론세스바예스, 출발의 떨림
스페인 나바라 지방의 아침 공기는 프랑스와는 사뭇 달랐다.
피레네의 능선을 넘어 도착했던 전날 저녁, 수도원 알베르게의 두터운 벽은 차가운 산바람을 막아주었지만, 긴장과 피로로 뒤엉킨 잠은 그리 깊지 않았다. 밤새 들려오던 이곳저곳의 코골이, 뒤척이는 소리, 누군가의 낮은 기침과 속삭임은 오히려 이곳이 순례자들의 ‘첫 공동체’임을 실감나게 했다. 그리고 새벽, 여명이 깃들 무렵, 알람 소리와 함께 순례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복도에는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끌며 나서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알베르게의 작은 식당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빵과 버터, 잼, 그리고 따뜻한 커피. 어제의 피로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속을 데워주자 마음은 금세 길 위로 나아갈 채비를 했다.
문 앞에서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는 인사가 오갔다. 스페인 순례길의 상징 같은 이 짧은 인사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당신의 길이 평안하기를’이라는 축복이 담겨 있었고, 그 말 한마디에 묘한 용기와 위안이 스며들었다.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의 석조 건물이 점차 뒤로 멀어지고, 산길로 향하는 작은 도로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주비리(Zubiri), 약 22km 거리. 중간에 부르게테(Burguete), 에스피날(Espinal) 같은 작은 마을을 지나야 했다. 전날 피레네를 넘으며 겪은 강풍과 추위는 잠시 잊었지만, 오늘의 길은 길게 이어지는 오르내림과 자갈길, 숲길, 하천을 건너야 하는 여정이었다.
길 초입에서 순례자들은 자연스럽게 무리를 지었다. 어제 함께 오리손에서 밤을 보냈던 독일인 노부부, 론세스바예스 성당에서 잠깐 인사를 나눈 일본인 여성 순례자, 그리고 혼자 조용히 걷는 듯했지만 금세 무리에 스며드는 젊은 유럽 청년들. 이 길은 국적도, 나이도, 신분도 초월한 공동의 길이었다.
나는 배낭의 무게를 다시 느꼈다. 여전히 어깨끈이 눌러오는 압박은 익숙해지지 않았고, 허리 벨트를 조여야만 무게가 조금 분산되었다. 어제까진 단순히 ‘도전’이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이제는 ‘견뎌내야 한다’는 다짐이 조금씩 더 강해졌다.
길은 곧 숲으로 이어졌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숲길, 습기를 머금은 나무 냄새, 새들의 지저귐. 발 밑에 깔린 낙엽이 폭신한 듯하지만, 작은 돌들이 섞여 있어 발바닥에 전해지는 압박은 은근히 고통스러웠다. 동행하는 아내가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오늘은 좀 길어 보이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부르게테와 에스피날, 낮의 빛과 순례자들
론세스바예스를 떠나 한 시간쯤 걸었을까, 숲을 벗어나니 작은 마을의 지붕들이 나타났다. 그것이 부르게테(Burguete)였다. 흰 벽과 붉은 기와 지붕으로 된 집들이 차례로 늘어서 있고, 창문마다 화분 속 빨간 제라늄이 피어 있었다. 아침 햇살이 점점 세지면서 안개가 걷히고, 돌길 위로 길게 드리운 순례자들의 그림자가 춤을 췄다.
부르게테는 작지만 소박한 매력이 있는 마을이었다. 길가에 자리한 카페 앞에는 이미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다. 커피잔과 바게트빵, 토르티야 조각이 테이블마다 놓여 있었고, 서로 다른 언어가 공기 중에 섞여 흘러나왔다. 독일어, 영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이 작은 마을 카페는 그야말로 세계의 교차로였다.
우리는 카페 안쪽 자리에 앉아 따뜻한 카페 콘 레체와 바게트를 주문했다. 버터와 잼을 발라 한 입 베어 물자, 그 단순한 맛이 왜 그렇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어제 피레네를 넘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기에, 빵 한 조각과 커피가 주는 위안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동지애 같은 것, 그리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무언의 다짐이 오갔다.
카페를 나서니, 마을 어귀에서 한국인 청년 두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가 한국말로 인사하자, 놀라운 듯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한 명은 휴학 중이고, 다른 한 명은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이 길에 들어섰다고 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묘한 결심이 느껴졌다. 서로 다른 이유로 이곳에 왔지만, 어쩌면 같은 목적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졌다. 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햇살이 마치 무수한 창문을 열어놓은 듯 반짝였다. 땅은 아직 젖어 있어 미끄럽기도 했고, 돌길은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이 상쾌했고, 풀과 흙의 냄새가 우리를 감쌌다.
점심 무렵, 우리는 에스피날(Espinal)에 도착했다. 마을 중앙 광장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바(Bar)와 슈퍼마켓이 있었다. 바 안은 이미 순례자들로 북적였고, 모두가 접시 위에 담긴 토르티야, 하몽 샌드위치, 그리고 맥주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우리도 간단한 점심을 주문했다. 토르티야와 맥주 한 잔. 평소 같으면 가볍게 넘겼을 식사였지만, 걷고 난 뒤라서인지 이 단순한 음식이 최고의 만찬처럼 느껴졌다.
점심 식사 후 잠시 광장에서 쉬는데, 한 프랑스 중년 부부가 다가왔다. 그들은 어제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에서 잠깐 마주쳤던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영어가 서툴렀지만, 손짓과 미소로 대화를 이어갔다. “피레네를 잘 넘었냐”는 질문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국경을 넘어 스페인 땅에 들어섰다는 그 사실이, 서로에게 신기하고도 뿌듯한 경험이었음을 공유하는 순간이었다.
에스피날을 떠나며 나는 다시 배낭의 무게를 느꼈다. 어깨와 허리가 점점 무거워졌고, 발바닥은 점점 화끈거렸다. 아내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가끔 “괜찮아?”라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조금 힘들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의 힘듦은 곧바로 주변 풍경과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희석되었다.
숲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작은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오래된 순례자들의 흔적일까, 혹은 이 길에서 생을 마감한 누군가를 추모하는 것일까.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기도하는 순례자들을 보며, 이 길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깊은 영적 여정임을 다시 느꼈다.
전설의 다리 ― 푸엔테 데 라 라비아(Puente de la Rabia)
에스피날을 지나 다시 숲길과 작은 언덕들을 오르내리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에 석조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 이름은 푸엔테 데 라 라비아, 직역하면 ‘광기의 다리’ 혹은 ‘광견병의 다리’라 불린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광견병에 걸린 가축을 이 다리 위 세 번 돌게 하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순례길은 단순한 자연의 길이 아니라, 이처럼 수많은 전설과 믿음을 품은 장소들을 지나가며 걷는다.
나는 다리 위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한참 바라보았다. 잔잔히 흐르는 물결에 햇빛이 부서지고, 다리 난간에는 누군가 매달아둔 작은 십자가 장식이 달려 있었다. 옆에서 만난 독일 순례자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는 건 단순히 길을 지나가는 게 아니에요. 이 다리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느낌을 받곤 하죠.”
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가축의 병을 고친다는 전설은 믿기 어렵지만, 내 어깨 위의 무거운 짐과 마음속의 불안을 조금 내려놓는 상징적 순간임은 분명했다.
주비리(Zubiri) 입구 ― 돌마을의 풍경
다리를 건너고 한참을 걸으면 드디어 주비리 마을의 지붕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비리’라는 이름은 바스크어로 ‘돌다리 마을’을 뜻한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마을은 강가와 돌다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집들은 대부분 회벽에 붉은 지붕을 얹은 전통 양식이었고, 길가에는 작은 가게와 카페가 늘어서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저녁 식사의 냄새였다. 숯불에 구워지는 고기의 향, 빵집에서 퍼져 나오는 고소한 향기, 그리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하루 종일 산을 넘고 언덕을 걸으며 지쳤던 몸이, 마치 ‘이제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을 풀어냈다.
알베르게에서의 하루 마무리
우리는 주비리의 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들어갔다. 건물은 오래된 석조 주택을 개조한 듯했는데, 1층은 공용 식당, 2층은 여러 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였다. 배낭을 벗어놓고 침대에 앉는 순간, 다리에 몰려드는 피곤함이 물결처럼 몰려왔다.
저녁 식사 시간, 스페인식 순례자 메뉴(메뉴 델 페레그리노)가 나왔다. 첫 번째는 따끈한 렌틸콩 수프, 두 번째는 구운 닭고기와 감자튀김, 마지막으로 레드와인과 요구르트가 곁들여졌다. 음식이 특별히 화려하거나 값비싼 건 아니었지만, 온몸이 허기졌던 순례자들에게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옆자리의 프랑스인 부부가 “¡Buen provecho!(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했고,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며 웃으며 답했다. 언어는 달랐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루를 무사히 걸어왔다는 안도감과 내일도 함께 걷겠다는 다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피로와 성찰
잠자리에 들자, 발바닥의 화끈거림과 종아리의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배낭은 내려놓았지만, 몸은 여전히 걷고 있는 듯했다. 천장에서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이국의 밤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는가?”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몸의 고단함 속에서 마음속에 묵혀두었던 질문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가족 생각, 지나온 세월, 앞으로의 길….
아내가 옆자리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내일도 잘 걸을 수 있을까?”
나는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천천히 가면 돼. 오늘도 이렇게 걸어왔잖아.”
하루의 마침표
주비리의 밤은 고요했다. 창밖에서는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 첫날의 여정이 끝났다. 오늘 하루는 단순히 22km를 걸었다는 사실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전설의 다리, 그리고 스스로와의 대화가 더 깊게 남았다.
내일은 또 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눈을 감고,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는 인사를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