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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까미오를 생각하는가? ⑰

joyskim 2025. 7. 2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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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으로써 비로소 보이는 소중함

—  비워졌을 때, 진짜가 보이기 시작했다

 

왜 떠났는가?

나는 떠나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잠시 멀어지고 싶었다.

익숙한 거리, 반복되는 대화, 늘 정해진 길…
그 속에서 나 자신이 점점 흐릿해진다는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막연한 이유만으로
나는 까미노에 올랐다.

 

길 위에서 발견한 ‘부재의 선명함’

까미노의 아침은 언제나 낯설게 시작된다.
모르는 마을, 모르는 사람들, 모르는 언어 속에서
오히려 나의 마음은 또렷해지고 있었다.

떠났을 뿐인데,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 늦잠을 자도 잔소리 없이 커피를 내려주던 가족
  • 무심히 지나치던 골목의 가게 아저씨 인사
  • 손끝으로 넘기던 책장 속 작은 메모
  • 매일 듣던 그 사람의 숨소리

멀어졌을 때,
그 모든 일상의 소음들이 소중한 배경음악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떠남은 버림이 아닌 ‘거리두기’였다

까미노를 걷는다는 것은
삶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거리를 두는 일이다.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나서야,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을 때 내가 편안한가?’
‘누구를 떠올릴 때 마음이 흔들리는가?’
‘나는 지금 그 사람에게, 그 시간에 충실했는가?’

길은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묻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감각

하루 종일 걷고 또 걷다가
해질 무렵에 작은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참 따뜻한 일이구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떠났기 때문에,
돌아갈 수 있는 곳의 소중함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가끔 떠나야만 사랑할 수 있다.
너무 가까이 있을 땐 흐릿했던 것들이
거리를 두었을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까미노는 내게 말해주었다.
"떠남은 잃음이 아니라, 다시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말은, 아직도 내 걸음 안에 살아 있다.